주내감리교회

2017년 11월19일 주일예배

말       씀 : 자기의를 드러내지 않는 신앙생활
성경봉독 : 8:30-35 (오기순집사)

본문은 아이 성의 전투에서 승리한 이스라엘이 에발산에서 단을 쌓는 내용입니다. 아이 성의 전투에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하나님의 적은 교만이라는 것입니다. 교만은 배후에 하나님이 일하심을 생각지 않고 자기 힘으로 스스로 자립하려는 것을 말합니다. 이스라엘은 여리고의 전투의 승리에 도취한 나머지 배후에 하나님이 계셨다는 것을 잊어고 아이성을 자기들의 힘으로 정복하고자 했으나 실패합니다. 아무리 하찮은 일이라 하더라도 자기 힘대로 했을 땐 실패하나 하나님 의지하고 나아가면 승리합니다. 이처럼 배후에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을 알고 산다는 것은 신자에게는 참으로 중요한 문제입니다. 이스라엘은 아이 성의 전투에서 승리 한 뒤 에발산에서 단을 쌓습니다. 신명기 27장에 보면 에발 산과 그리심 산에 대한 내용이 나옵니다. 에발 산은 저주를 선포하는 저주산입니다. 그리고 그리심 산은 축복을 선포하는 축복 산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상식으로 쉽게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단을 쌓는 장소가 에발 산 즉 저주 산이라는 점입니다. 단을 쌓는다는 것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지금 식으로 말하자면 예배를 드리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단을 쌓는다면 당연히 축복 산에서 해야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에발 산에서 단을 쌓는 것은 과연 무엇 때문입니까? 하나님은 그 어느 인간도 스스로 구원을 이루고 복 받을 자격이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하십니다. 제사를 드린다는 것은 희생의 제물을 바침으로서 죄에 대한 용서를 구하는 것입니다. 즉 죄에 대한 용서는 희생의 제물이 흘린 피를 통해서 오는 것임을 보여주는 것이 제사입니다.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단을 쌓을 수 있는 사람은 자기 죄를 아는 자이고, 죄를 안다는 것은 자신이 저주받아야 할 인간임을 아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우리 역시도 스스로를 죄인이라 인정하고 영적 에발산에 서서 예수님의 보혈을 통한 구원과 은혜를 열망하는 삶을 살아 주시기를 소망합니다. 그런데 31절에 보면 에발 산에 단을 세울 때 ‘쇠 연장으로 다듬지 아니한 제단’을 세우라고 하십니다.
다듬는다는 것은 인간의 의도와 노력과 공적이 들어가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다듬지 아니한 돌로 단을 세운다는 것은, 인간의 죄가 해결되는 현장에는 인간의 노력과 공적이란 전혀 개입되지 않는다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죄란 희생 제물의 피만 가릴 수가 있는 것이고, 그 피안에서 하나님과의 화목이 있다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스스로 번제물이 되시고 화목제물 되신 분이 누구십니까? 예수님입니다. 결국 하나님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피안에서 우리 죄를 용서하시고 화목하신다는 것을 구약의 이스라엘을 통해서 계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복이란 스스로 죄인임을 알고 저주받을 자임을 아는 그 자리에 임합니다. ‘내가 바로 죽을 죄인입니다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외치면서 자기를 치는 그 자리가 복의 자리입니다. 복은 그리스도의 희생을 통해서 오게 되어 있습니다. 세상의 부귀와 영광이 그리스도의 희생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어진다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이 그리스도의 희생을 통해서 온다는 것입니다. 열심히 겸손히 신앙생활을 해 나가되 절대 자신의 의를 드러내지 않는 우리들의 믿음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TAG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