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내감리교회

2017년 12월 03일 주일예배

말        씀 : 미가의 메시아 신앙
성경봉독 : 미 5 : 2-6 ……………최진수권사

미가의 메시아신앙은 두 가지가 중요합니다. 하나는 메시아가 사람들의 예상을 뛰어넘는 방식으로 오신다는 사실입니다. 미가는 메시아가 나실 장소를 베들레헴이라고 합니다. 베들레헴은 예루살렘처럼 큰 성읍이 아닙니다. 농촌이고 변방입니다. 그런 곳에서 메시아가 오실 거라고는 사람들이 생각하기는 불가능합니다. 에브라다는 부족 이름입니다. 에브라다 부족은 숫자가 겨우 1천명에 불과한 작은 부족입니다. 사람들의 주목을 끌만하지 못한 농촌과 작은 부족에게서 메시아가 오신다는 것은 메시아 사건은 사람의 계획과 예상을 넘어서 하나님의 신비로운 섭리에 의한 것이라는 뜻입니다. 다른 하나는 메시아는 고통을 감당하신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을 미가는 ‘여인의 해산’이라고 표현했습니다. 해산의 고통은 구체적인 역사입니다. 지금 유대는 아시리아로부터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미가는 메시아가 오셔서 자신들의 비참한 역사적 현실로부터 자신들을 구원하실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미가의 메시아사상은 마태복음 기자에 의해서 역사적 정점을 맞게 되었습니다. 그는 동방박사 이야기를 보도하면서(마 2:1-12) 미가의 예언을 인용했습니다. 동방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와서 새로 태어난 유대인의 왕을 찾는다는 소문이 퍼지자, 헤롯왕은 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을 모아놓고 그리스도가 어디서 나겠느냐고 물었습니다. 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미 5:2절을 인용해서 베들레헴이라고 대답했습니다. 마리아라는 여자의 몸을 통해서 세상에 태어난 예수님이 바로 미가가 예언한 메시아라는 뜻입니다. 메시아는 히브리어로 ‘기름부음을 받은 자’라는 뜻인데, 헬라어로는 그리스도라고 합니다. 구세주, 구원자를 가리킵니다. ‘그가 우리를 … 건져내리라.’는 미가의 진술이 여기에 해당됩니다. 옳은 말입니다. 메시아는 건져내는 이, 즉 구원할 이입니다. 구원할 이라는 말은 우리가 어디에 빠져 있다는 것을 전제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메시아가 필요 없습니다. 미가가 볼 때 유대인들은 내우외환에 시달렸습니다. 안으로는 공동체의 모든 가치들이 파괴되었고, 밖으로는 아시리아의 위협에 시달렸습니다.
그 어디에도 구원의 불빛을 찾기 힘들었습니다. 절망 그 자체였습니다. 거기서부터 메시아 희망은 시작됩니다. 절망이 없으면 희망도 없습니다. 대개의 사람들은 절망에만 머물지만 선지자는 거기서 더 근원적이고 원초적인 희망을 봅니다. 선지자들은 어둠이 깊을수록 더 밝은 빛을 볼 수 있었습니다. 복음서 기자들과 신약성서 기자들이 본 궁극적인 절망과 어둠은 무엇이었을까요? 그래서 그들이 참된 메시아가 예수님이라 굳게 믿게 된 것일까요? 그것은 죄와 죽음입니다. 죄와 죽음이 인간에게 가장 절대적인 절망이자 어둠입니다. 미가가 본 불의와 공동체 붕괴도 사실 따지고 보면 죄와 죽음이라는 더 깊은 절망과 어둠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한 그것을 그림자처럼 안고 삽니다. 여기로부터 우리를 구원할 이가 참된 메시아입니다. 예수님을 보십시오. 인류 역사에서 오직 주님만이 부활하셨습니다. 그 분에게서 죄와 죽음이 극복되었습니다. 그분만이 우리를 죄와 죽음에서 구원하십니다. 우리는 그것을 진리라고 믿습니다. 주님께서 다시 오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우리는 그 약속을 믿습니다. 부활 생명이신 그분이 이미 문 앞에 이르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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