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내감리교회

2017년 9월03일 주일예배

말       씀 : 주님이 인정하시는 우리의 삶
성경말씀 ; 고후 10:12~18 성경봉독 ; 김창린집사

고린도 교인들을 선동하고 있는 거짓 교사들은 자기들이 정하여 놓은 기준을 가지고 ‘바울은 사도가 아니라’고 말하며 그가 하는 일들이 틀렸다고 말합니다. 자기들은 바르고 선을 행한다고 주장합니다. 사도바울은 이러한 그들의 모습을 전해 들으면서, 그들은 그들 스스로 세워놓은 판단과 생각에 따라서 자기를 헤아리고 비교하는 어리석은 자라고 말씀합니다.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지혜가 무엇입니까? 여호와를 경외하며 하나님을 아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명철이라(잠언 9:10, 또한 잠언 1:7)고 말씀합니다. 눈금이 잘못된 자를 가지고 어떤 것의 길이를 백 번 잰다고 한들 바른 측량이 될 수 없으며, 잘못된 저울로 무게를 천번 단다고 한들 바른 무게를 얻을 수 없습니다. 13절에 “그러나 우리는 분량 밖의 자랑을 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이 우리에게 분량으로 나눠주신 그 분량의 한계를 따라 하노니 곧 너희에게까지 이른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바울은 자기 자신을 판단함에 자신을 기준으로 삼지 않습니다. 여기서 “분량”이라는 말로 사용된 헬라어는 카논인데 이는 기준, 표준 혹은 규범이라는 뜻입니다. “분량의 한계를 따라서”라고 함은 ‘기준(혹은 규범)의 범위 내에서’,‘하나님의 말씀과 뜻에 따라 허용되어지는 범위 안에서’란 의미입니다. 고린도 지방에 이르러 고린도 교회를 개척한 일도 바울이 임의로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따라 하나님의 지시가 계셔서 그렇게 한 일입니다. 바울이 사도권을 주장하는 것도 분량 밖에 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바울을 사도로 부르신 까닭에 사도의 권위를 내세우는 것입니다. 바울은 그의 분량의 한계 내에서 하나님께서 그에게 맡기신 직분을 감당하며 그 교회와 성도들의 믿음이 확장되어짐에 따라 이를 통하여 그의 한계를 확장하여 가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16절에서 “이는 남의 한계 안에 예비한 것으로 자랑하지 아니하고 너희 지경을 넘어 복음을 전하려 함이라.”고 말씀합니다. 바울은 그의 복음의 영역을 계속 넓혀가기를 원하되, (고린도 교회 내의 거짓교사들같이) 남이 이미 터를 닦고 전파한 지역을 침범하는 것이 아니라 고린도 지방 이외의 지역으로 계속 복음을 확장하여 나가기를 사모하며 기도했습니다.
“자랑하다”에 해당하는 헬라어 카우카오마이가 주님과 함께 사용될 때 세 가지 뜻을 포함합니다. 첫째는 주님을 자랑하다요, 둘째는 주님을 찬양하다)이며, 셋째는 주님께 영광을 돌리다란 뜻입니다. 주안에서 분량의 한계를 따라 자랑하기를 원하는 사람은 주님을 자랑할 것이요, 주님을 찬양할 것이요, 주님께 영광돌리는 삶을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18절에 “옳다 인정함을 받는 자는 자기를 칭찬하는 자가 아니요 오직 주께서 칭찬하시는 자니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를 판단하시고, 인정하시고, 칭찬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지 우리 자신들이나 다른 사람들이 아닙니다. 우리의 우리 삶에 대한 자랑이 무엇에 따른 것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삶을 돌아봄에 거울이요 기준이 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인정함을 받는다고 말씀합니다. 자기에게 관대한 우리 사람들이 ‘내가 이만하면 참으로 바르고 선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았지.’ 그렇게 자신들에게 관대한 마음으로 후한 평가를 내리지만, 우리를 옳다, 그르다 판단하실 이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말과 행동의 판단기준이 무엇입니까? 우리의 기준(=분량)은 바른 것입니까? 하나님의 말씀과 뜻이 우리의 판단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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