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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으니 2017-01-02 15:04:12
작성자 sancho
조회 97

말씀 :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으니

성경말씀 : 고후 5:11~17

세상에 우리 사람처럼 악하고 추하고 더러운 것이 없다하리만큼 우리 인간은 타락하고 부패하였습니다. 겉으로는 다 그럴듯해 보이지만 속을 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비겁합니다. 정직하지 못합니다. 야비합니다. 욕심 사납습니다. 악합니다. 추합니다. 부끄럽습니다. 우리의 은밀한 생각과 삶들이 만일 드러나게 된다면, 들통 나게 된다면 우리는 그 수치 때문에 잠시도 견디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죄인입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였다는 말씀이 옳습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는 하나님의 말씀이 옳습니다. 여기서 복음은 시작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가 다 사함 받게 되었습니다. 주홍 같이 붉은 죄가, 진홍 같이 붉은 죄가 흰 눈 같이, 양털 같이 희게 되었습니다. 동에서 서가 먼 것 같이 옮기어 졌습니다. 하나님조차 기억치 못하시게 되었습니다. 그림을 그리다가 망친 사람에게 다시 새 도화지가 주어지듯, 죄로 말미암아 스스로 자신의 인생을 망친 우리들에게 하나님은 다시 새 도화지를 주시며 다시 시작하라 하십니다. 우리에게 새로운 인생의 기회를 주시기 위하여 주님은 스스로 십자가에 못 박아 그 값을 치루셨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었던 사람입니다.(밧세바 간음사건) 비열하기 짝이 없는 죄를 지은 다윗이 다시 성군이 되고, 믿음의 조상이 되고,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되었던 것도 십자가 은혜 때문이었습니다. 십자가의 능력은, 보혈의 능력은 역사적인 십자가 사건 이후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인 십자가 사건 이전에도 동일하게 역사한다는 면에서 십자가의 사건은 초역사적인 사건입니다. 십자가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은 십자가에서 생겨난 것이 아닙니다. 전부터 있었던 것을 십자가의 사건을 통하여 우리에게 나타내 보여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때문에 죄 사함을 받는 것이고, 십자가 사건 이전의 다윗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때문에 죄 사함을 받고 구원을 얻게 된 것입니다.

다윗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습니다. 죄 사함을 받았습니다. 다윗은 그것이 너무나 감사하고 감격스러워서 시편 32편 1절에서 다음과 같이 고백 합니다. ‘허물의 사함을 얻고 그 죄의 가리 움을 받은 자는 복이 있도다’ 바울에게서도 그와 같은 다윗의 은혜를 찾아 볼 수 있습니다. 다윗의 시편 32편 1절과 같은 말씀이 바로 오늘 본문 중에 나오는 고린도후서 5장 17절의 말씀입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사도바울이 이 본문에서 말씀하고 있는 ‘그리스도 안’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14절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하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모든 사람의 죄가 함께 죽었기 때문에 누구든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는 것입니다. 이전 것은 지나가고 새로운 사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 기독교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복음은 바로 이것입니다. 예수 믿으면 부자가 되고, 예수를 믿으면 어떤 병에 걸렸든지 다 낫고, 기도를 통하여 자기의 소원을 이루는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축복입니다. 요셉이 요셉이 되고, 야곱이 야곱이 되고, 모세가 모세가 된 것은 다 저들이 요셉과 야곱과 모세였기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저들을 깨끗케 하시고 새롭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이것이 축복입니다. 이 은혜와 축복을 알게 되면 다른 축복에는 별로 관심이 없게 됩니다. 사는 것과 죽는 것이 매 일반입니다. 가난과 부함도 큰 의미가 없습니다. 하나님 때문에 얼마든지 가난해 질 수 있습니다. 부자가 된다고 하여도 부자의 의미는 부에 대한 소유에 있지 않습니다. 주를 위하여 더 많이 쓸 수 있음에 있습니다.

바울도 오늘 본문 속에 평생 주를 위하여 살고, 주를 위하여 죽고 싶어 하는 열정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고 있습니다. 바울은 주를 위하여 죽고 싶어 합니다. ‘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살아있는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 바울처럼 하나님의 은혜에 감격하여 살고 죽는 것의 의미와 목적을 자기 자신에게 두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두며 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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